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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크맨_24년 8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8-04 18:09
조회
137

하루 하루 최고 기온을 갱신하는 불가마 같은 여름입니다. 이런 무더위에는 머리를 차갑게 만드는 진지한 소설을 함께 읽어보려고 싶습니다.

애나 반스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작가입니다. ‘밀크맨은 북아일랜드 분쟁을 18세 소녀의 시각으로 풀어냅니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은 고유 명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 ‘딸아’ ‘어쩌면 남자 친구’ ‘알약 소녀그리고 진짜 밀크맨’. 그래서 이 소설을 읽다보면 1970년대 북아일랜드로 특정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여기처럼 느껴지고 담박에 몰입하게 됩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 반대자들이 만든 규칙에 반기를 들어 상도를 벗아난 남자로 찍혔지만 손수건에 싼 고양이 머리를 든 18세 소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식을 잃은 핵소년의 엄마를 돕고, 아버지가 없는 집의 목공이나 수리 같은 일을 돕는, 모두를 사랑하는 우유 배달부 진짜 밀크맨, 반대자들의 주요 인물로, 18살 소녀인 나에게 '웃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하지만 은밀하고 끈질기게 접근하는 42세의 기혼남. 나의 동선을 꿰고 있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동차 매니아인 '어쩌면 남자 친구'를 자동차 폭탄으로 살해할 것이라고 암시하며 결국은 자신의 차에 타게 하는 밀크맨점령국에 반대하는 반대자들 '좋은 편이고 영웅이고 영예로운 사람이고 전설적인 불굴의 투사이고 수적으로 불리하면서도 목숨을 걸고 우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일어나 온갖 역경에 맞서며 게릴라전을 벌이는 사람(p177)'이어야 할 밀크맨은 스물 세살이나 어린 소녀를 손에 넣기 위해 온갖 소문을 퍼뜨리고, 뒤쫓고 '어쩌면 남자친구'를 습격하는 일까지 서슴치 않으며 그녀를 장악해오다가 국가 암살단에 살해됩니다. 진정한 밀크맨은 누구일까요

 - 다른 사람들 모두 처음부터 쉽게 받아들인 사실을 나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이미 밀크맨의 것이었다는 기정사실- p433

 예상치 못한 시점에서 보이지 않는 감시 카메라 셔터 소리, 점령지에 사는 누구나 올라가 있다는 파일, 소문들, 누가 좋은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는 도덕적 딜레마, 저격, 폭탄, 늘 긴장 속에 살며 멍한 표정에 감정과 생각을 숨기고 사는, 사람을 신뢰할래야 신뢰할 수 없는 사회.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취약한 상태에 놓이지 않기 위하여 스스로 진정한 사랑을 끝내고 엉뚱한 짝을 찾습니다.

 -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실한 사랑을 두려워하게 된다.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는 습성'은 내가 정말 원하는 짝이, 이른 나이에 죽임을 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바로 이거다. 만약에 바로 그 사람, 내가 사랑하고 원하고 또 나를 사랑하고 원하는 사람과 진실하고 건실하고 충만하고 만족스럽고 행복한 결합을 이룬데 다가, 내 짝의 사랑도 식지 않고 나의 사랑도 식지 않고 두 사람 다 정치적 문제 때문에 살해 당하지 않는다면 어떻하나? 그렇게 영원히 행복하고 즐겁다면? 정말로, 진실로 그런 일을 받아들일 수 있나? 이곳 공동체는 그럴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크고 지속적인 행복을 바라는 것은 과도한 일로 봤다. 그래서 의심, 죄책감, 후회, 두려움, 절망, 원망 속에서 끔찍한 자기 희생을 치르면 결혼하는 것이 이곳에서는 암묵적인 필수 코스였다. p369

 책을 두 번 읽어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진짜 밀크맨밀크맨이 나에게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 지역의 여성들과 이야기 해보라고 권하는 장면에서 진짜 밀크맨이 이 일의 젠더적인 측면을 단박에 파악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가부장제하에서 슬쩍 슬쩍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성희롱, 성적 폭력,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는 복수의 남자들, 아무개 아들 아무개 까지도, 처음 만남에서 얼굴도 바라보지 않던 밀크맨이 어떻게 서서히 주인공을 압박하여 바지 말고. 예쁜 거. 여성스럽고 여자답고 우아하고 예쁜 드레스를 입어까지 가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않고도 절대 타지 않겠다던 차에 올라타게 만드는지, 폭력의 작동 방식에 대해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50번째 부커상 수상에 걸맞게 캐릭터가 생생하고 심리 묘사가 탁월합니다. 결혼해야 한다고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를 괴롭히던 엄마가 진짜 밀크맨이 총상을 입는 것을 계기로 사랑의 불씨를 되살려내 급기야 딸의 옷장을 뒤지는 모습에서, 18''가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 앞에서 느끼는 수치심, 밀크맨에 대한 굴욕감.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마치 실제로 겪은 것처럼 마음의 통증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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